밤마리 장터에서 대광대패들에 의래 시작되었다는 오광대놀이는 점차 신반 진주 산청 창원 진동 김해 등지로 전파되었고다시 해로를 통해 수영 동래 부산진 등지로 전해져 야류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거니와 고성 오광대 역시 이 갈래에 속한다고 믿어져 있다.
이같이 오광대와 야류는 거의 경남 내륙과 해안 일대의 각지에 분포되었으나 이 놀이를 받아들인 연대와 경로는 제각기 다르다.경상우도에서의 오광대가 전문 연예인들에 의해 연희된 대처의 가면극이라면 주로 경상좌도에 분포된 야류는 들놀음으로서 비직업적인 연희자들,즉 마을 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오광대'라는 이름의 오에 대해서는 오행실, 오처요설, 오과장설 등이 있으나 모두 같은 논지에 의한 것이며"야유"는 들놀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성오광대는 모두 다섯마당으로 짜여져 있으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발상지는 낙동강변의 초계 밤마리라고 일러오며 신반-진주-창원을 거쳐서 김해 동래쪽으로 다른 한갈래는 고성,통영으로 갈라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