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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대 소개

 

대광대 소개

1.대광대

-동의어 죽광대 다른 표기 언어 竹廣大
-주로 죽방울 받기·솟대타기 등의 곡예와 탈놀이를 하였다. 오광대 탈놀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대광대 탈놀음의 첫 과장이 다섯 광대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2.놀이 순서

이 놀음을 공연하기 며칠 전에 대광대 일단이 신주(神主)같이 모시는 ‘서낭당각시’라는 인형을 대광대의 한 사람이 오른손에 안고, 공연할 마을로 들어와서 집집마다 다니며 문 앞에서 “대광대 들어왔소.” 하면 대개 그 집에서는 “서낭당각시 들어오면 재수가 있다.” 하여 엽전을 몇 푼씩 주는데 돈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정한 날, 정한 장소에 대광대 일단이 가면과 소도구를 넣은 궤짝을 짊어지고 긴 장대는 손에 들고 와서는 놀이를 하는데, 저녁에 장작불을 피워 놓으면 먼저 악공이 고깔을 쓰고 악기를 쳐울리면서 놀이마당(무대)을 몇 바퀴 돌고는 일반 관중들을 자리에 안정시켜 놓는다.
그런 뒤 맨 먼저 무동(舞童)들이 나와서 어깨 위 다섯 동까지 하여 놀고는 들어가고, 다음은 광대 한 사람이 나와서 죽방울 받기를 하다가 들어가면, 그다음은 긴 장대(대 위에는 십자형으로 되어 있다.)를 세우고 그 장대 밑에는 몇 사람이 붙어서서 넘어지지 않게 붙잡는다.

그러면 재주를 하는 광대 한 사람이 나와서 그 높은 장대를 타고 올라가 십자형 꼭대기에서 몸을 날려 넘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재주를 20분쯤 하다가 내려오면 그다음에는 탈놀음을 연출한다. 먼저 오방신장(五方神將) 탈을 쓴 다섯 광대가 나와 춤추고 들어가면 중이 나와 춤춘다.
민속학자 심우성은 대광대패의 공연 종목을 풍물, 솟대타기, 죽방울 받기, 얼른(요술), 오광대 가면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3.한국민족대백과사전 中 의령군의 민속

이 고장에서 ‘집돌금’이라고 불리는 지신밟기는 정초에 마을의 농악대가 동제당에 가서 당산굿을 하고 공동우물에서 샘굿을 한 뒤, 정월 보름까지 가가호호를 방문해 조왕풀이·성주풀이·철륭풀이 등의 축원을 해주는 놀이이다. 이때 각 가정에서 내놓는 돈이나 곡식은 마을의 공동사업에 쓴다.이 밖에 특기할 만한 것은 신반이 전문 유랑예인 집단인 신반대광대패의 본거지로, 예전에는 유명한 오광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이 고장 사람들은 신반이 한말의 명창 손덕겸(孫德謙)을 배출한 영남 시조의 본고장이라고 자랑하면서 지금도 시조창을 널리 부르고 있다.그 밖에도 연날리기·널뛰기·돈치기·제기차기·씨름·낫치기·호미치기 등의 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4.놀이 설명

  • 1)풍물
    • 영남지역 풍물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신밟기 등 축원 목적의 마을굿이 잘 계승되어 있고 개인놀이로는 특히 상모놀이가 발달하여 있다. 몇 차례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템포가 빠르고 힘찬 꽹과리 가락의 특징이다.
  • 2)솟대타기
    • 전신주 높이 가량 되는 긴 장대를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의 재인이 타고 올라가서 장대 꼭대기의 십자형 나무 위에서 몸을 뒤집고 매달리는 등 여러 가지 재주를 연출하는데, 이 장대 타기를 하는 자를 ‘대광대’라고도 한다.
  • 3)죽방울
    • 조선 시대까지는 전국 곳곳에 전승, 유포되었으리라 생각되나, 현재는 전라남도의 일부 지역에서 무당들이 굿할 때 유일하게 활용하고 있다.죽방울은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인데 농악에 쓰이는 장구와 비슷하며, 마치 두 개의 팽이를 뾰족한 부분끼리 잇대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 4)얼른(요술)
    • 전문 유랑광대패의 은어로, ‘요술’이나 ‘마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술이나 마술을 부리려면 손놀림이 매우 빨라야 하는데, 이런 뜻에서 시간을 끌지 아니하고 바로라는 의미의 부사로 쓰인다.
  • 5)오광대
    • 경상남도 낙동강 서쪽 유역과 남해안 지방에서 전승되는 탈춤.오광대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등장인물의 수 또는 마당[科場]의 수가 다섯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 오행설(五行說)과 벽사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1) 각지 야유·오광대 가면극 과정 구성 비교표
      순서 과정명칭 초계 신반 마산 진주 통영 고성 거제 김해 수영 동해 부산진
      1 오방신장무 과장 × × × × × × ×
      2 중 과장 × × × ×
      3 문둥이 과장 × × ×
      4 양반 과장
      5 영노 과장 ×
      6 할미영감 과장
      7 사자무 과장 × × × ×
      (2)의령 신반 오광대 과장
      ① 오방신장 과장:오방신장 5인이 패랭이에다 호수(虎鬚:모자 전후, 좌우에 꽂는 흰 빛깔의 털) 네 개씩을 꽂아 쓰고 긴 소매 달린 두루마기를 입고 황제 장군부터 무대 중앙에 나와 서면, 그다음에 푸른 옷을 입은 청제 장군이 동쪽에, 붉은 옷을 입은 적제 장군이 남쪽에, 흰옷을 입은 백제 장군이 서쪽에, 검은 옷을 입은 흑제 장군이 북쪽에 차례로 나와 선다. 그다음 각각 네 신장이 중앙의 황제 장군을 보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한 뒤, 타령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춤을 추고, 그다음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② 중 과장:고깔을 쓰고 소매에 홍백(紅白) 끝이 달린 두루마기를 입은 상좌 중이 먼저 나오고 뒤를 이어 송낙을 쓰고 장삼을 입고 목에 염주를 건 노장(老長) 중이 타령장단에 맞추어 나와 사방으로 돌아보면서 상좌 중과 같이 한바탕 승무를 춘다.
      ③ 양반 과장:청보양반·차양반·홍백·눈머리떼·턱까불·초란이·콩밭골손·말뚝이가 차례로 하나씩 타령장단에 맞추어 우쭐거리는 춤을 추면서 등장한다.모두 한바탕 춤을 춘 뒤에 청보양반이 “양반의 자식이란 선(先)은 어떻고, 후(後)는 어떻고…….” 하면서 말을 하다가 하인 말뚝이를 부르자, 말뚝이는 지금은 상놈이라 자기를 이놈 저놈 하지만 자기의 근본은 양반이라는 것을 5대조에서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의 벼슬한 것을 들어 설파한다. 그리고는 양반의 말꼬리를 잡아 빗대어 양반을 은근히 조롱하고 모욕을 한다.
      ⑤ 영노 과장:영노가 양반의 뒤를 따라다니며 “비- 비-” 소리를 내니, 양반이 “네가 무엇이냐?” 하자, 영노가 “양반 아흔아홉 명을 잡아먹고, 양반 너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나왔다” 하니, 양반은 자기가 양반이 아니라고 한다.그리고는 개·돼지·소·뱀·구렁이·오줌 등등 사람이 아닌 온갖 것이라고 둘러댄다. 영노는 그래도 좋으니 잡아먹겠다고 한다. 양반이 기가 막혀 어떻게 하면 면할까 하고 궁리 끝에 “내가 네 할아버지다.”라고 하자, 영노가 “세상에 어찌하여 할아버지를 잡아먹겠느냐” 하므로 위기를 모면한다.
      ⑥ 할미·영감 과장:할미가 영감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한 곳에서 영감을 만나 좋아하였으나 영감이 인천에서 제물집이라는 젊고 예쁜 작은마누라를 얻었으므로 그로 인하여 가정 풍파가 일어난다.영감이 작은 마누라만을 좋아하고, 또 그녀가 낳은 아이만을 좋아하므로 이를 본 할미는 샘이 나서 아이를 밟아 죽인다. 그러자 영감이 격분하여 몽둥이로 할미를 때려죽인다. 그리하여 아들들이 나와 “살인자는 죽여야 한다.” 하고 자기 어머니의 초상을 치른다.

4.의령신반대광대의 역사적 사실

의령신반대광대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우리고장의 자랑스러운 민속놀이로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인 1920년경에 인멸되었으나, 의령문화원의 지원으로 지역의 학자들과 예술인들의 연구로 역사 속에 묻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미비하지만 발굴해내어 지역의 콘텐츠로 재탄생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경남민속예술축제에 의령군 대표로 출전하여 은상을 받았고 2020년 말에는 의령신반대광대의 콘텐츠 토대 연구라는 책자가 발간되어 학문적으로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의령신반대광대는 우리고장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이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꾸준히 교육해서 신반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함은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참고문헌)

1)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남편), 문화재관리국, 1977, p.615참조
2) 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6, p.211참조
3) 서연호, 창원오광대 현지 조사보고서, 월간문예진흥, 1979,11, p.73∼75 참조.
4) 송석하, 전게서 p. 218-223참조
5) 최상수, 야유·오광대 가면극의 연구, 성문각, 1984, p.73-74, p .116-131 참조
6) 송석하, 전게서 p.209∼223, p.374-394참조
이두현, 한국가면극, 문화재관리국, 1969, p.421참조
최상수, 전게서, p.75 참조
7) 서연호, 진주오광대 현지조사보고서, 월간문예진흥, 1979,11. p.77∼79 참조
8) 정인섭, 진주오광대탈놀음, 조선민속(1호), 1993. 1, p.32-37 참조
송석하, 전게서 p.378∼384참조
최상수, 전게서 p 1訓∼144 p.57참조
9) 송석하, 전게서 p.211참조
10) 서연호, 1987. 5. 23. 현지조사 참조
11) 최상수, 전게서 p.74, p172∼187참조
서연호, 1987 8. 23. 현지조사 참조
12) 이두현, 전게서, p.421참조
13) 이두현, 전게서, p.421참조
14) 정상박, 오광대와 들놀음 연구, 집문당, 1986, p.197-201 참조
15) 정상박, 전게서, p.203∼210참조
16) 정상박, 전게서, p.211∼218참조
17) 정상박, 전게서, p.219∼224참조
18) 송석하, 전게서, p.210∼211참조
19) 정상박, 전게서, p.44참조
20) 송석하, 전게서 p.210참조
21) 송석하, 전게서 p.210참조
서연호, 1987. 8 22. 현지조사 참조
22) 같은 현지조사 참조
23) 이두현, 전게서, p.326참조
24) 이두현, 전게서, p.78, p.420참조
25) 서연호, 1987 8. 22. 현지조사 참조
26) 심우성, 한국의 민속극, 창작과비평사, 1976, p.34참조
서연호, 땅재주의 옛명인 송순갑, 꼭두극, 1988. 봄호, pp. 78∼82 참조
27)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경남편), p.614참조
28)의령신반대광대 콘텐츠 토대연구 p9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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